[오이스가] 사랑은 비를 타고

2016. 11. 13. 02:02썰썰썰/하이큐

[오이스가]

오이카와 토오루x스가와라 코우시








 당신을 처음 만난 날은 하늘이 당신 머리색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비가 좋았다.



-

 “…아. 뭐야. 분명 비 별로 안온다고 했는데.”

 

 오이카와는 짜증이 잔뜩 담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늘을 보고, 길거리를 보고 한숨을 푸욱 쉰 그는 결국 정류장에 있는 벤치에 주저앉아버렸다. 분명 버스를 타기 전까지는 한두 방울씩 오던 비였는데, 버스에서 내릴 때쯤엔 구멍이 난 듯 퍼붓고 있었던 것이었다. 비를 맞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그는 결국 벤치에 앉아 비가 그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비는 그칠 줄 모르고 연신 퍼부어지고 있었다. 주변을 보니 자신들이 비를 피하기 바쁘고, 우산을 씌워줄 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비를 맞고 싶진 않았다. 온 몸이 흠뻑 젖어 옷도 무겁고, 무엇보다 찝찝함은 정말로 느끼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아, 담배나 필까.


 “저기, 혹시 우산 없어요?”


 막 가방을 뒤적이려던 찰나,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확히는 옆, 그리고 위쪽에서. 뭘까 싶어 오이카와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제일 먼저 보인 것은 옅은 밤색의 눈. 그 밑에 자리 잡은 눈물점. 지금 비오는 하늘을 닮은 회색빛 머리색.


 “……어…, 네?”


 바보 같았다. 바보 같다! 오이카와는 스스로가 대답하고도 너무너무 바보 같아 속으로 제 머리를 수십 번 때렸다. 이렇게 대답하려던 게 아닌데. 저도 모르게 넋을 놓고 말았다. 하지만 이 눈앞에 있는 남자는 충분히 그렇게 될 만도 했다. 눈이 마주친 순간, 너무, 너무 예뻐서.


 “혹시 어느 쪽으로 가요? 아니, 아까부터… 계속 하늘만 보고 한숨쉬길래, 우산이 없나 해서.”


 눈꼬리를 휘고, 입꼬리를 당겨 웃는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 그에 따라 같이 움직이는 눈물점, 나긋하고 상냥한 말투, 제 몸에 딱 맞춘 듯 한 정장, 깔끔한 차림새, 그리고 내밀어진 손에 들린 하얀 우산. 회사원으로 보이는 남자는 그다지 키가 크진 않았지만, 충분히 어른스러움을 뽐내고 있었다. 예쁘면서도 어른스러운 사람이었다.

 오이카와는 잘생겼다. 그건 누가 봐도 그랬다. 그건 오이카와 본인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랬기에 꼭 학교 내가 아니더라도, 학교 밖에서도 호감과 호의를 보이는 사람들은 꽤나 많았다. 주로 여자들, 가끔 남자들도. 그래서 익숙했다. 이런 호의들이. 너무나 익숙했기에 이럴 땐 그냥 앗싸, 땡잡았다! 하며 그의 오지랖과 배려심에 감사를 하기 마련이었는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저 여전히 멍한 얼굴로 손가락을 들어 제 집의 방향을 가리켰다.


 “아, 정말요? 저랑 같은 방향이네요. 그럼 학생만 괜찮으면 우산 같이 쓸래요?”


 그 질문이 끝나자마자 오이카와는 벌떡 일어섰다. 고개를 미친 듯이 끄덕이자 벌떡 일어남에 놀랐던 남자가 조금 소리 내어 웃었다. 정말로 바보 같은 모습이었지만 그 순간이 너무나 좋아서 놓칠 수 없었다, 라고 오이카와는 생각했다.

오이카와가 일어서자 남자가 그를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오이카와의 키가 그보다 컸다. 오이카와는 그에게서 우산을 낚아챘다.


 “제가 들게요. 괜찮죠?”

 “…아. 음. 그래요, 그럼.”


 아무래도 제 키가 오이카와보다 작았고, 그 때문에 제가 우산을 들면 오이카와가 불편함을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이카와가 우산을 펴고 그 안으로 들어가자 남자도 그 옆으로 붙었다. 우산이 작다보니 두 남자가 쓰려면 아무래도 붙어야 했다. 남자의 정장소매가 오이카와의 팔에 닿자 어쩐지 심장소리가 커지는 것 같았다. 심장소리가 너무 커서 자신이 제대로 걷고 있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이름이 뭐에요?”

 “……에, 네?”

 “이름말이에요. 이름.”


 아, 혹시 좀 실례인가? 하고 그가 말을 덧붙이자 오이카와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아니에요. 하고 대답하자 남자가 다시금 웃었다. 웃는 것도 왜 저렇게 예쁘지. 남자가 저에게 했던 질문은 뒤로 한 채 다시금 그런 생각에 빠져있었다.


 “그럼 알려줘요. 이름. 이것도 인연이니까?”

 “…아, 오, 오이카와 토오루예요. 오이카와 토오루.”

 “아아, 오이카와 토오루. 예쁜 이름이네요. 저는 스가와라 코우시.”


 예쁜 이름이네요. 예쁜 이름이네요. 예쁜 이름이네요.

 남자의 말이 머릿속에서 메아리치듯 울렸다. 예쁜건 그쪽이면서, 누구한테 예쁘다고… 잠깐, 뭐라고?


 “네? 뭐, 뭐라고요?”

 “혹시, 듣는 게… 불편한, 건가요?”


 마치 제가 실수했냐는 듯 한 말투에 오이카와는 다시 고개를 마구 저을 수밖에 없었다. 자꾸만 머릿속에서 다른 생각들을 하게 되니 소리를 못 듣는 거다. 그러다보니 반문을 하게 되고, 결국 오해를 산 것 같았다. 오이카와는 급히 입을 열었다.


 “비, 비가 오니까, 너무 많이 와서 그런가, 소리가 잘 안 들리네요.”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제가 조금 더 크게 말할게요. 스가와라 코우시라구요. 제 이름. 스가와라, 코우시!”


 스가와라 코우시. 이름마저도 예뻤다. 어쩐지 그냥 다 예뻐 보이는 것 같았다. 처음 눈이 마주친 순간, 그 눈도, 눈물점도, 회색빛 머리도, 말투도, 작은 키도, 심지어 이름까지도. 왜일까. 그냥 전부 예뻐 보였다. 그랬기 때문일까. 이 회색빛 하늘조차도 예뻐 보이는 것 같았다. 이게 이 사람의 효과일까. 아까까지만 해도 비 오는 것이 너무 싫었던 오이카와였지만, 지금은 어쩐지 비가 그치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아, 저는 이쪽으로 가는데, 오이카와군은?”


 스가와라가 발걸음을 멈추자 오이카와도 따라서 발걸음을 멈췄다. 스가와라가 가리킨 곳은 제 집과는 다른 방향이었다. 오이카와의 집은 여기서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야만 했다. 스가와라가 가리킨 방향은 그의 집에서 정반대로 가는 방향이었다. 그 말은 스가와라와 여기서 헤어져야 한다는 말이었다.


 “저는… 저, 쪽…”


 인데, 이쪽으로 가도 돼요. 라는 말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가려는 찰나, 스가와라가 오이카와의 손을, 정확히는 우산손잡이를 쥔 손을 꼬옥 잡았다. 그 순간, 너무 놀라 하마터면 화들짝 놀라 우산을 집어던질 뻔 한 것을 겨우 참고 스가와라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여전히 오이카와를 올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그럼, 이 우산은 오이카와군이 가져가도록 해요. 이거, 편의점에서 산 비싸지 않은 우산이니까 부담 갖지 말고. 여기까지 우산을 들어준 답례라고 생각해줘요. 조심히 가요. 오이카와군.”


 말이 마치자마자 스가와라는 대답을 듣지 않겠다는 듯 자신이 들고 있던 가방을 제 머리위에 올렸다. 그리곤 곧바로 자기가 가리켰던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오이카와가 막을 새도 없이 뛰어가 버려 결국 오이카와의 손은 허공에 머물러있었다.

 뭐야, 대체. 그가 중얼거렸지만 아무도 대답해주는 이가 없었다. 얼른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어쩐지 제 손을 감싸 쥐던 스가와라의 온기가 남아있는 것 같아 그곳에서 쉽사리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결국 오이카와는 스가와라가 시야에서 안보일 때까지 하염없이, 그 자리에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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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오이카와와 회사원 스가입니다..!

이런 고장난(??) 오이카와 너무 좋아합니다...

이게 사실 원고용으로 쓰려던건데 마침 소재랑 딱 맞아서

결국 써버렸네요!! 뒷이야기도 있는데 그건 나중에 차차.....

아무튼... 그.. 전력은... 대지각입니다.....이번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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