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괴물] 쏟아지는 폭우, 차가운 시체.

2014. 7. 25. 01:54썰썰썰/프랑켄슈타인

쏟아지는 폭우, 차가운 시체.

“…비가 와.”

괴물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쇠를 긁는 듯 한 낮은 소리는 비때문인지 더 크고 낮게 울렸다. 이미 폐가가 되어버린 집 안에서 괴물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미친 듯 쏟아지는 폭우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비뿐이었다. 창밖을 보던 괴물이 팔을 들어 올렸다. 괴물의 팔은 피에 젖어 붉게 변해있었다. 팔이 창밖으로 나가 비에 젖기 시작했다. 폭우 때문에 팔은 금방 젖어들었다. 금세 축축해져버린 코트와 손끝에서 핏빛 물방울이 떨어졌다.

“…나는 비가 싫어.”

창밖을 향해있던 시선을 바닥으로 돌렸다. 바닥엔 눈을 감은 남자가 누워있었다. 정확히는 눈을 감은 시체였다. 이미 죽은 지 꽤 된 듯 체온은 식어버려 차가워져있었다. 목 부분이 피에 젖어있는 시체를 보던 괴물은 다시금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남자는 빅터의 명령으로 괴물을 쫓던 사람이었다. 괴물은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처음 만들어져서 자신의 창조주에게 쫓길 때 보았던 사람이었다. 남자는 자신을 보고 바로 총을 당기려 했다. 하지만 폭우 속에서 표적을 맞추기란 쉽지 않았다. 총은 빗나갔고, 괴물은 단숨에 그의 목덜미를 찢어놓았다.

“비가 정말로 싫어.”

생각하기 싫은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며 괴물은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손과 코트에서 핏빛이 사라지자 괴물이 팔을 내렸다. 하지만 이미 완전히 젖어버린 코트 소매는 바닥으로 물방울을 계속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래. 맞아. 이젠 정말로… 창조주, 당신이 말한 괴물이 되었는지도 모르지.”

남자가 괴물을 보자마자 쫓았던 걸로 봐서 빅터는 아직도 괴물을 쫓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3년이었다. 빅터에게서 도망친 지 약 3년째가 되어가고 있었지만 그는 아직도 괴물을 죽이는 것을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나는 죽지 않아. 당신이 그렇게 만들었잖아.

괴물이 되고 싶지 않았다. 처음 눈을 떠서 창조주를 만나고, 괴물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도망쳐야 했을 때, 그는 괴물이 되고 싶지 않아서 계속 되내였다. 나는 괴물이 아니다. 나는 괴물이 아니야. 나도 창조주와 똑같이 살아 숨 쉬고 말할 수 있는 생명체인데, 괴물이 아닌데. 계속, 계속 혼자서 그렇게 되내였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모두가 그에게 괴물이라는 말만 해댈 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사실이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갖고 있고, 팔이 나가고, 목이 으스러져도 죽지 않았다. 결국 현실은 괴물이었다.

창조주라는 자는 자신이 직접 만든 피조물을 죽일 생각으로 3년 내내 쫓고 있고, 그 피조물은 괴물이 되기 싫어 도망쳤지만 결국,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들인가.

“하지만, 당신은. 당신만큼은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

내 스스로가 괴물이라 소리친다고 해도. 괴물은 조용히 말을 내뱉었다. 그 말엔 온갖 원망과 증오, 분노, 비탄 같은 감정들이 담겨있었다. 바드득, 이를 가는 소리가 폐가를 울렸다. 괴물이 주먹을 세게 쥐었다. 주먹에 힘이 들어가 하얗게 질려버렸다. 그 넘치는 감정에 눈물이 나올 법도 했으나 괴물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단 한 방울도. 하지만 그 분노와 슬픔을 대신 하듯 목 언저리가 쑤셔왔다. 괴물은 비가 맞고 싶어졌다.

괴물이 문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체의 피 때문에 괴물의 발은 피투성이였다. 괴물이 문을 세게 열었다. 비바람이 불어와 괴물의 머리와 코트를 적셨다. 괴물이 한걸음, 한걸음 내딛었다. 땅에는 괴물의 붉은 발자국이 새겨졌지만 이내, 비 때문에 금방 사라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