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빅터앙리]새장 속 태양

2014. 7. 25. 00:50썰썰썰/프랑켄슈타인

16. 갈증

그러면 너무나 외로울 것 같았다.

얇은 손목과 발목

죄책감

 

 

 

“어디 갔다 왔어!!!”

 

큰 소리가 성 안을 울렸다. 조용히 집안일을 하고 있던 룽게도, 문을 닫고 들어오던 앙리도 놀란 눈으로 그 소리의 주인공을 쳐다보았으나 정작 장본인은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앙리가 소리 때문에 놀라 못 닫은 문을 닫으며 멋쩍게 웃어보였다.

 

“빅터 자네, 왜 이리 화가 났나. 응?”

“어디 갔다 왔냐고 물었어. 앙리, 대답해!”

 

빅터는 매우 화가 난 것 같았다. 일그러진 표정과 흥분한 어조가 그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빅터가 문 앞에 서있는 앙리에게 다가갔다. 앙리의 코앞에서 화를 내는 모습이 마치 으르렁거리는 늑대 같았다. 앙리가 달래려는 듯 상냥하게 말해 봐도 전혀 들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빅터는 단지 앙리가 어딜 다녀왔는지가 중요했다. 결국 앙리는 작게 한숨을 쉬며 빅터의 손을 꼬옥 잡았다. 빅터의 표정이 조금 풀리는 것이 보였다.

 

“잠시 요 앞에 있는 시장에 다녀왔네. 간식거리가 떨어져서 말이야. 이제 곧 티타임이니까.”

“…그런 건 룽게를 시키면 되잖아! 그리고 왜 나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나간 건데?”

“자네가 실험 때문에 바빠 보였으니까. 어차피 잠깐 나갔다 오는 거고. 자네, 나 걱정했어?”

“…….”

 

빅터가 말없이 앙리를 노려보았다. 그런 빅터를 보며 앙리가 다시 상냥하게 웃었다. 솔직하지 못하구나. 라는 말이 입가에 맴돌았지만 입 밖으로 내면 빅터는 분명 다시금 화를 낼 터였다. 앙리는 말하려는 것을 그만두고 빅터의 손을 잡아당겼다. 빅터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이끌려왔다.

 

“말없이 다녀온 건 미안해. 내가 경솔했어. 내가 사과의 의미로 맛있는 쿠키와 차를 가져오도록 하지. 기다려줘.”

 

앙리가 빅터를 테이블에 앉혔다. 빅터는 대답이 없었지만 앙리는 익숙한 듯 빅터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고는 부엌으로 향했다. 빅터는 테이블에 팔꿈치를 대고 손으로 턱을 괴어 고개를 부엌 쪽으로 돌렸다. 복잡하지 않은 부엌의 구조덕분에 테이블에 앉아서도 부엌 쪽을 전부 볼 수 있었다.

빅터는 턱을 괸 채 아무 말 없이 찻잔을 꺼내는 앙리를 쳐다보았다. 앙리는 뭐가 그리 좋은지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를 걸고 있었다. 찻잔을 꺼내고 쿠키를 담는 앙리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따뜻하고 상냥하고, 그리고 선한 사람. 그것이 앙리 뒤프레였다. 앙리는 자신에게 늘 ‘넌 나에게 태양 같은 존재’ 라고 했지만 그건 틀린 말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반대였다. 오히려 빅터쪽에서 앙리라는 존재는 ‘태양’ 그 자체였다. ‘태양 같은’ 존재가 아닌 ‘태양’ 이었다. 늘 옆에 있으면서도 없으면 안 되는 그런 존재. 하지만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는 그런 존재.

 

—하지만, 그건 싫잖아?

마음속에서 누군가가 속삭였다. 한구석에서 작게 속삭이던 목소리는 점점 크게 들려 귓가에서 웅웅거릴 정도였다. 갖고 싶지? 놔주기 싫지? 그렇지?

 

“빅터, 어떤 쿠키가 좋아?”

“…아, 나… 나는 아무거나 상관없어.”

 

멍하니 앙리를 쳐다보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눈이 마주치자 빅터가 당황한 듯 대답했다. 그럼 자네 것은 달지 않은 쿠키로 하겠네. 앙리가 말했다. 말을 걸어오는 앙리 때문에 시선을 다른 곳에 두었던 빅터는 잠시 후 다시 시선을 앙리에게로 돌렸다. 빅터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알고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인지, 정말로 모르는 것인지 앙리는 티타임을 준비하기 바빴다.

찻잔을 쟁반에 담는 앙리를 두 눈으로 훑었다. 양말을 신지 않아서인지 바지사이로 살짝살짝 보이는 발목과 소매를 걷은 덕분에 보이는 손목이 눈에 띄었다. 그의 손목과 발목은 유난히 얇아보였다. 발목도, 손목도 한손으로 힘주어 잡으면 으스러질 것 같았다. 안 그래도 마른 몸이 자신 때문에 더 마른 것 같아서 죄책감에 가슴이 아파왔다.

 

—그렇다고 놓아줄 거야? 자유롭게 해줄 거야?

—그 없이 살아갈 자신, 있어?

아니. 아니야. 안돼. 안돼안돼안돼안돼안돼안돼. 속삭이는 목소리에 대답하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안돼. 그럴 수 없어. 빅터는 마음속으로 부정하고 또 부정했다. 말라가는 앙리와는 별개로 빅터, 자신은 앙리를 놓을 수 없었다. 앙리가 없으면, 그러면 너무나 외로울 것 같았다.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 사람은 태양 없이는 살 수 없어.

 

—놓아주지 않아.

 

어두운 무언가가 발끝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건 지독한 소유욕이었다. 앙리를 향해있는 강한 소유욕이 빅터의 머릿속도, 마음속도 지배하고 있었다. 강한 갈증에 목이 말랐다. 태양빛이 강하면 목이 마른 법이었다. 지금 자신의 태양이 내뿜는 빛은 너무나도 강했다. 그랬기에 목이 말랐다. 이 갈증을 채워줄 수 있는 건 오로지 그 원인 제공자뿐이었다. 하지만… 너는.

 

“짜잔. 과자집 점원이 오늘 구운 쿠키라고 했으니까 분명 맛있을 거야! 먹어보게.”

 

앙리가 반짝거리는 눈으로 빅터에게 쿠키가 담긴 접시를 내밀었다. 접시에는 아기자기한 쿠키들이 잔뜩 올려져 있었다. 정말로 오늘 구운 것인지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가득 올라왔다. 빅터가 천천히 손을 뻗어 쿠키를 입에 넣었다. 입 안에서 쿠키가 부셔지며 달콤한 맛이 났다.

 

“…나쁘지 않아.”

“맛있으면 맛있다고 하면 될 걸. 아무튼 자넨 솔직하지 못하니까.”

“……목말라.”

“응? 뭐라고? 자네 뭐라고 했나?”

“…아니야. 아무것도. 쿠키나 마저 먹게.”

 

빙긋 웃으며 되묻는 앙리에게 쿠키를 밀었다. 뭐가 그렇게 맛있는 건지 앙리는 계속해서 쿠키를 입에 넣었다. 빅터는 손에 묻어있는 쿠키가루를 탈탈 털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럼에도 입 안에서 쿠키의 달콤한 맛이 계속 맴돌았다. 다시 갈증이 일었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에 빅터는 다시금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사라지지 않는 갈증에 빅터는 연신 차만 마셔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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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s님 리퀘로 써본 빅터앙리입니다

빅터가 앙리에게 소유욕과 집착을 막 내뿜는게..좋아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