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17. 04:55ㆍ썰썰썰/하이큐
[오이스가]
오이카와 토오루x스가와라 코우시
—좋아해.
그 한마디로 시작했던 너와의 연애는 그야말로 행복 그 자체였다. 눈을 떠서 다시 감을 때까지 너만을 생각했다. 머릿속에 너 하나로 가득해서 다른 것들은 돌아볼 여유도, 생각도 들지 않았다. 너라는 사람이 나의 머릿속을 채우고, 나의 세계를 변화시켜갔다. 너는 나에게 내려온 천사였다. 그렇기에 나는 너를 있는 힘껏 사랑하기로 했다.
“스가쨩. 떠나자. 같이 살자.”
“뭐?”
“예쁜 초승달모양의 섬이야. 거기 바닷가에 있는 마을인데, 밤엔 등대도 있어서 바다경치가 정말 끝내준다구.”
너는 나와 떠나고 싶어 했다. 너는 이미 하나부터 열까지 계획을 다 짜놓은 듯했다. 이건, 그래. 프러포즈였다. 내가 벙찐 얼굴로 설마 이거 프러포즈냐, 하며 물었을 땐 네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응. 맞아. 오이카와씨가 코우시한테 하는 프러포즈. 그 말에 나는 결국 눈물을 보였다. 그날 나는 펑펑 울었고 너는 우는 나를 달래기 위해 넓은 품안에서 힘껏 안아주었다. 너와 함께라면 아무것도 무섭지 않았다.
“오이카와.”
“응?”
“행복해?”
“…행복해.”
네가 작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너는 후회했다. 후회하고 있었다. 나와 여기에 온 것을. 너는 말하지 않았고, 표현하지 않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집 뒤의 마당에서 배구연습을 하던 너를. 텔레비전에서 동료들이 경기하는 모습을 넋 놓고 보던 너를. 그런 날이면 밤에 몰래 울던 너를. 너는 나와 함께 하기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다. 네가 좋아하던 배구도, 그동안의 생활도, 사람들도 전부다. 그리고 여기에 나와 함께 있다. 하지만 내가 모든 것을 채워줄 수 있을 리 없었다. 나와 떠나기 전까지, 너는 너만의 미래가 있었다. 너도 분명 그것을 꿈꾸고, 실현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겠지. 그래서 네 미래가 미웠다. 나는 이미 아무것도 없어. 배구를 관두고 일반대학에 들어가, 일반적인 공부를 하고 일반적인 회사에 들어갔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관두기도 쉬웠다. 너와 함께 새로운 것을, 새로운 미래를 꿈꿨다. 하지만 너는 아니었다. 아니, 처음엔 너도 같았겠지. 새로운 미래. 하지만 결국 너는 네가 꿈꾸던 미래를 잊지 못했다. 이렇게 붙잡고 있으면 결국엔. 그렇기에 나는 너를 보내주기로 했다. 네 미래를,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
“오이카와. 가.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그게 무슨소리야. 스가쨩.”
“너는 전부 버리지 못했잖아. 아직도 배구가, 네 동료들이, 그 생활이 좋은 거잖아. 네가 꿈꾸던 그 미래를 아직 못 버렸잖아.”
“아냐, 스가쨩! 오이카와씨는…!”
“더 이상 날 슬프게 하지 마. 오이카와.”
“코우시…….”
“널 사랑해. 앞으로도 그럴 거야. 스가와라 코우시에게 ‘오이카와 토오루’를 대신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러니까, 네가 꿈꾸던 모든 것들을 이루고와. 최고가 되어서 와.”
너는 나를 힘껏 안았다. 마치 같이 떠나자고 했던 날, 울던 나를 안아주었던 그 때처럼. 네 온기가 나를 감싸 안았다. 나도 너를 마주 안아주었다. 마지막이니까 이 정도는 봐줘.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그렇게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네가 떠났다. 나는 더 이상 지체하지 말라고 했다. 너에게 바로 가라고 했다. 너는 다녀올게. 라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떠났다. 이 섬에서 나를 남겨두고 떠났다.
—아, 오이카와 선수! 또 서브로만 득점입니다! 저 서브를 당해낼 사람이 없어요!
“잘 지내고 있어?”
—역시 에이스, 오이카와 토오루 선수입니다!
“……오이카와.”
네가 떠난 지 몇 달이 흘렀다. 네게 하루하루, 오던 연락은 차차 뜸해지고 있었다. 내가 답을 하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네게 오는 편지, 문자. 전부 답을 하지 않았다. 전화는 받지 않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를 받지 않자 그 전화도 점차 뜸해지고 있었다. 다른 사람을 깊게깊게 사랑하고 있어? 입 안에서 머무는 질문은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네가 정말로 응. 이라고 대답할까봐. 그래서 내가 무너질까봐. 나의 세계였던 너를 보내고 나니 나의 세계는 텅 비어버렸다.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응석부릴 순 없었다. 그저 울 순 없었다. 먼저 보낸 것은 나였다. 네 미래를 위해, 네 자신을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너를 보냈다. 그리고 예상대로 너는 여기서보다 훨씬 행복해보였다. 경기를 하는 너는 밝았고, 아름다웠다. 누구보다도 멋지게 날아오르고 있었다. 너는 더더욱 멋지게 변화하고 있었다.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었다.
“잘 지내고 있어?”
“밥은 잘 먹어? 또 우유 빵만 먹는 거 아니지?”
“배구는 할 만해?”
“……사랑하는 사람은 생겼어?”
너와 함께 노을을 보던 마을의 언덕에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너에게 말을 걸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내가 없는 세계에서 더욱 빛날 것이다. 세상 누구보다도 아름다울 것이다. 그렇기에 괜찮아. 괜찮았다.
“날, 기억하고 있어? ……젠장, 보고 싶어.”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되뇌었다. 괜찮아야해. 괜찮아야해. 닦지 않은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바닥에 떨어졌다. 아냐. 괜찮지 않아.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눈물로 흙바닥이 조금 젖었다. 울지말라며 안아주던 오이카와는 없다. 내가 없는 세계에서, 또 다른 누군가를 안아주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더 울음이 나왔다. 결국 한동안 펑펑 울었다.
“스가와라 코우시, 최악이야.”
눈물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예전의 강했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 어느새 너로 인해 약해져버린 내가 있었다. 누가 보지 않음을 다행으로 여겼다. 목소리는 이미 잠겨버렸지만 상관없었다. 실컷 울고 나니 좀 나은 것 같기도 했다. 자, 이제 다시 괜찮다고 주문을 걸 시간이야. 다시 강한 예전의 나로 돌아갈 시간. 이제 그만해야했다. 너를 위해서도 이런 것들은 전부 멈춰야 했다.
“좋아해.”
나에게 내려온 천사였던 너를. 나의 세계였던 너를.
“사랑해.”
나에게 함께 떠나자고 했던 너를. 여기서 나와 사랑했던 너를.
“고마웠어.”
나를 잊지 않아준 그동안의 너에게. 지금까지 너를 사랑했던 나에게.
“안녕.”
모든 것에 작별을 고해. 네 목소리, 네 웃음, 네 품안, 네가 시작했던 우리 관계, 너와 함께 했던 시간, 내가 질투했던 모든 것들. 오이카와 토오루에 관한 모든 것들. 전부다.
“그래도 혹시나, 다음 생에 다시 너와 같은 세계에 살 수 있다면 만나러 가게 해줄래?”
그 때는 내가 먼저 시작할게. 내가 먼저 좋아한다고 말할게. 대신 끝은 네가 내는 걸로 하자. 나는 작게 웃었다. 응. 그거면 충분해.
언젠가 혹시나 가끔 네가 생각해주길 바란다. 아, 예전에 그랬던 때가 있었지. 좋아하던 사람이 있었지. 하고. 그렇게 가끔 기억할 추억으로 남길 기도한다. 나는 여기 남을 것이다. 돌아가지 않기로, 그렇게 마음먹었다. 너는 그 곳에서, 나는 이곳에서 이렇게 각자 살아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저 가끔 서로의 세계를 추억할 수 있길. 바라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네게 정말로 안녕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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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치해진 새벽에 이 노래를 듣고 아, 오이스가로 써보고 싶다. 해서
써본 글이에요. 노래가사를 참고로해서 썼습니다.
이별소재를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새벽감성이 절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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