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스가] 18m -1

2016. 5. 5. 02:32썰썰썰/하이큐

 [오이스가]

오이카와 토오루x스가와라 코우시





—졌다.

 머릿속에선 이 문장만이 맴돌 뿐이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그저 패배했다는 생각뿐이었다. 눈앞에서는 아오바죠사이의 승리를 축하하는 함성소리가 들리고 있었고, 뒤에서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숨을 들이키는, 눈물을 참고 있는 듯 한 숨소리만이 들리고 있었다. 너무나 대조적인 상황에 웃음조차 나올 뻔했다. 다시금 느낀 패배의 맛은 여전히 쓰고, 떫어서 삼킬 여유조차 없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모두가 큰 소리로 외쳤다. 그것은 비단 감독님만을 향한 말이 아닌 것이었다. 그동안 코트에서 싸운 멤버들, 밖에서 목이 터져라 응원해준 멤버들 그 카라스노, 모두를 위한 말이었다. 스가와라는 목에 핏대가 설만큼 큰 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울었다. 모두와 함께 울었다. 눈물이 흘러 뺨을 타고 턱 끝에서 떨어졌지만 닦을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울고 또 울며 밥을 먹었다. 눈앞에 놓인 음식들은 전부 맛있는 향기를 내보내고 있었지만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밀어 넣고 또 밀어 넣었다. 아직 끝이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며 짜디짠 밥을 목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

 스가와라는 멍한 정신으로 수업을 듣고 있었다. 눈앞에서 선생님이 무어라 떠들어대고, 칠판에 열심히 적고 있었지만 보이지 않았다. 어제의 피로가 풀리지 않은 걸까, 아니면 너무나 꿈같았던 과거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은 걸까. 스가와라는 잠시 그런 고민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쓸데없는 생각.

 어제의 일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동안 계속 코트 밖에서 팀원들이 경기를 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목이 쉬어라 응원하고, 기운을 북돋아주고, 조언을 하고. 그러다가 오랜만에 뛰어보는 경기였다. 모두에게 한마디씩 해주고 경기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한 번 더, 한 번 더, 날아오르는 팀원들에게 토스를 해주었다. 그 때 만졌던 배구공의 감각은 아직도 손에서 맴돌고 있었다.

 결국 후엔 다시 카게야마와 체인지하긴 했지만. 조금 분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오바죠사이도, 그를 이끄는 오이카와도 정말 강했으니까. 아오바죠사이는 정말로 강한 팀이었다. 팀원 하나하나가 전력을 다하고 능력도 뛰어났다. 그 와중에 제일은 오이카와 토오루였다. 그는 정말 유능한 세터였다. 스가와라는 경기하면서도 그의 플레이에 조금 감탄하기까지 했다. 선수하나하나의 능력을 끌어내고 향상시키고 있었다. 게다가 냉정한 판단력과 리시브를 허용하지 않는 서브까지. 다시 한 번 경기하고 싶어. 스가와라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수업에 집중했다.


 —다 같이 봄고교대회에 나간다.

 그렇게 확정된 순간 스가와라는 기쁨을 금치 못했다. 어제의 패배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았다. 다시 기회가 있었다. 다시 한 번 모두와 경기를 하고 토스를 올려줄 기회가. 스가와라는 그걸로 충분했다. 다이치도, 아사히도 모두 함께 대회에 나가자고 그렇게 말했다.


 “나도 지지 않도록 열심히 해야겠어.”


 운동장을 걷는 도중 스가와라가 중얼거렸다. 카게야마도 같은 팀이었지만 역시 같은 포지션으로서 지고 싶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카게야마만의 능력이 있었고, 스가와라는 스가와라 자신만의 능력이 있었다. 다음 대회에서는 좀 더 실력을 쌓아서 그 능력을 오래 발휘하고 싶었다.


 “…뭐야.”

 “저 자식이 왜?”

 “……에? 무슨 일…. 어, 저건?”


 머릿속으로 계속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있던 스가와라는 앞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낌새에 걸음을 멈췄다. 모두가 걸음을 멈추고 한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 스가와라도 자연스레 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여기에는 있어서는 안 될 사람. 오이카와 토오루가 서있었다. 어쩐지 조금 초조한 얼굴로.


 “…오이카와 선배.”


 역시 구면인 카게야마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다지 좋은 감정이 담긴 어투는 아니었지만 오이카와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는지 그들 앞으로 걸어왔다. 정확히는 스가와라 앞으로. 스가와라는 자신의 앞에 드리워진 큰 그림자에 당황스러움과 의문이 담긴 얼굴로 고개를 올렸다. 오이카와는 상냥하게 웃고 있었다. 자주 보였던 예의 그 미소.


 “…스가와라. 잠깐 시간 좀 내줄 수 있어?”


 이게 무슨 말 인걸까. 스가와라는 이해가 되질 않아 그를 올려다보기만 했다. 게다가 마치 친구사이인 것 마냥 말하는 저 말투는 대체. 옆에서는 모두가 놀라움과 당황함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저 오이카와 토오루가 왜? 대체 왜? 스가와라에게 무슨 일로? 묻고 싶은 것은 한가지였지만 오이카와는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스가와라를 보며 입을 다물고 있었다.


 “…저, 그… 왜?”

 “할 말이 있어. 내줄 거지?”


 이건 질문이 아니라 강요인 것 같은데. 스가와라는 목구멍으로 나오려던 말을 삼켰다. 오이카와는 아무래도 자신이 거절할거라는 생각을 하나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 안하려고 하는 걸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아오바죠사이는 다음 봄대회에도 출전할 것이고, 그렇다면 다시 싸우게 될 것이다. 무슨 이유에서 자길 보자고 한 것인지는 몰라도 대화를 함에 있어서 나쁘진 않겠지. 오이카와 토오루라는 남자는 나쁜 짓을 할 사람으로는 안보이니까…


 “그래, 알았어. 다이치. 얘들아. 먼저 가.”

 “하지만, 선배!”

 “스가!”

 “내가 나쁜 곳에 가는 것도 아니고. 걱정하지 마. 내일 보자.”


 스가와라는 모두에게 방긋, 웃으며 말했다. 다이치도, 니시노야, 히나타, 카게야마도, 모두가 걱정하는 얼굴이었지만 스가와라는 오이카와를 따라가기로 한 모양이었다. 내일보자며 손을 흔드는 스가와라의 모습에 결국 모두 말을 멈췄다. 얼굴엔 걱정이 한 가득이었지만 그 누구도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결국 스가와라를 제외하고 모두가 등을 돌려 운동장을 빠져나갔다. 스가와라는 여전히 자신을 내려다보는 오이카와를 데리고 운동장 구석으로 향했다.


 “음, 이름이 오이카와 토오루, 맞지? 무슨 일이야?”

 “팀원들이 스가쨩을 엄청 좋아하는구나. 나, 돌 맞는 줄 알았어.”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내뱉는 오이카와의 말에 스가와라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스가쨩? 스가쨔앙? 세상에. 이 호칭은 대체 뭘까. 그러고 보니 카게야마를 부를 때나, 경기할 때도 자신의 팀원들에게 쨩을 붙이던데 버릇인걸까. 그래도 그렇지 대화 한마디 해본 적 없는 상대에게 초면, 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화 한번 안 해본 사이인데 이렇게 친근하게 말해도 되는 걸까. 스가와라는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이 휘젓고 있었지만 여전히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어제 우리에게 이겼으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거 아닐까?”

 “아아.”

 “그래서, 나한테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될까?”

 “아, 스가쨩이라고 해도 괜찮지? 사실, 부르고 싶은 건 따로 있는데… 역시 지금은 좀 무리니까. 스가쨩부터 시작할까해. 스가와라쨩은 너무 긴걸.”


 마음 대로해. 스가와라는 작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고 할 틈도 없이 오이카와 스스로 정해버렸으니 여기서 스가와라가 뭐라고 해도 바뀔 것 같진 않았다. 게다가, 스가쨩이라고 부르겠다고 해도 앞으로 볼 일이 얼마나 있을까. 몇 달 후에 있을 대회에서 정도겠지. 그래서 대체 무슨 일 인걸까. 스가와라는 다시 입을 열었다. 세 번째 같은 말이었다.


 “그렇게 불러도 괜찮아. 오이카와. 이제 무슨 일인지 들어도 돼?”

 “……음. 그게.”


 여지껏 잘만 방긋거리며 대답하던 오이카와가 대답을 머뭇거렸다. 난감한 듯 웃고 있는데 어딘가 자꾸 초조해보였다. 불안한 건가? 하지만 오이카와가 자신의 앞에서 그런 감정을 내비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아오바죠사이, 오이카와는 카라스노와 스가와라에게 이겼고 당당할 터였다. 사실 여기까지 직접 온 이유도 모르겠지만, 저렇게 초조함을 내비칠 이유도 스가와라의 입장에선 전혀 모르겠는 것이었다. 스가와라는 말없이 오이카와를 쳐다보았다. 오이카와가 대답을 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오이카와가 조금 뜸을 들이다가 자신의 주머니에서 무언가 꺼내 스가와라에게 내밀었다. 이건,


 “휴대폰?”

 “스가쨩. 번호 알려줘.”

 “…에?”

 “번호. 스가쨩 번호, 알고 싶어.”

 “저… 왜? 그, 내 번호는 가져가서 뭐하려고?”

 “그야 당연히, 스가쨩이랑 연락하려고 그러지.”


 아니, 그러니까 대체 왜? 스가와라의 머릿속은 의문으로 가득 찼다. 물음표로 가득차서 터질 것만 같았다. 대체 오이카와는 왜 이러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영문을 모르겠어서 더 미칠 것 같았다. 오이카와와 만난 것은 경기때 잠깐. 1세트 후반과 2세트 초반 그 잠깐뿐이었다.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오랜만에 만난 절친 따위도 아니었다. 오이카와가 이럴 이유가 전혀 없었다. 스가와라는 얼굴에 의문을 띄운 채 오이카와가 내민 휴대폰 화면만 보고 있었다. 심플한 화면이 스가와라를 향하고 있었다.


 “저, 오이카와. 내가 이해가 되질 않아서 그러는데… 왜? 나랑 연락은 왜 하려고 하는 건지 물어봐도 될까?”

 “…….”


 스가와라가 최대한 상냥하게, 정말로 상냥하게 그에게 물었지만 그 질문에 오이카와는 입을 다물었다. 여전히 휴대폰을 내민 손은 그대로였지만 입은 다물어졌다. 스가와라는 그가 대답하길 기다렸다.


 “…내가, 스가쨩이랑 연락하고 싶어서.”

 “뭐?”

 “스가쨩한테 관심 있어. 오이카와씨가 계속 생각을 해봤는데, 이와쨩같이 우정을 키우고 싶은 건 아냐. 근데 스가쨩이 마음에 들어. 그냥, 계속 만나고 싶어.”

 “……난, 이해가… 아니,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가….”

 “그냥 오이카와씨가 그러면 그런 거야. 내가 직접 번호를 받으러 오는 거 처음이라고? 그러니까, 스가쨩 번호, 줘.”


 조금, 아니 매우 억지스러운 말투였다. 어린애같기도 한 그의 말에 뭐라고 반박해야할지 스가와라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 사이에 오이카와가 자신이 들고 있던 휴대폰을 스가와라의 손을 잡아 쥐어주었다. 휴대폰을 놓지 못하게 하려는 듯 그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오이카와의 초조한 낯빛에 스가와라는 얼떨떨한 얼굴을 그대로 내보인 채 얼떨결에 자신의 번호를 찍어주었다. 머릿속으론 아직 정리도, 이해도 못한 상황에 그저 번호가 찍힌 휴대폰을 오이카와에게 내미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것을 받아든 오이카와는 냉큼 저장버튼을 눌렀다. 초조함이 사라지고 정말 기쁜 듯 방긋 웃었다. 스가와라는 여전히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스가쨩, 연락할게. 꼭 받아. 꼭 받아야해. 알았지? 연락할게!”


 그리곤 스가와라가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오이카와가 냉큼 등을 돌려 뛰어가 버렸다. 빠르게 뛰어가는 등을 멍하니 바라보며 스가와라는 뒤늦게 입을 열었다.


 “대체, 이게 뭐야?”


 하지만 그 질문에 대답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풀리지 않는 의문을 안은 채 스가와라는 한동안 오이카와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그렇게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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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스가 첫 연성입니다..! 썰은 많이 풀었는데 본격글은 처음..

21화보다가 생각나서 이후 이야기 날조해봤습니다 (..)

처음엔 오이카와가 리드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사귄 후엔 스가가

오이카와 머리 위에 있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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