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드큘렌필] 먼 미래에2

2014. 9. 13. 00:29썰썰썰/기타

“……주인님.”

 

낡아빠진 방 안에는 렌필드의 목소리만이 울리고 있었다. 나지막하게 울리는 목소리에도 주변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무서우리만치 고요했다. 렌필드는 주변을 조금씩 둘러보며 한걸음, 한걸음 내딛었다. 입을 닫은 그 대신 바닥에서 채이는 돌멩이들이 발끝과 부딪혀 소리를 내고 있었다. 계속 소리가 방 안을 울렸지만 집주인은 여전히 조용했다.

 

“…주인님.”

 

천천히 걷던 그가 발걸음을 멈췄다. 그의 시선 끝엔 회색빛의 관이 하나 놓여있었다. 관의 생김새 자체는 꽤나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공기는 관과 반대로 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렌필드는 천천히 관에 다가가 관위를 어루만졌다. 열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에게는 차마 열어볼 용기가 없었다. 이 안에는 분명히 자신의 주인이 잠자고 있으리라. 자는 모습마저 매우 아름답겠지.

 

"주인님… 주인님, 제가 왔어요. 못 오시는 주인님대신, 렌필드가 왔어요."

 

렌필드의 목소리는 거의 울듯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말하다 못해 결국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가 입고 있던 빳빳한 양복이 구겨져버렸지만 렌필드는 개의치 않는 듯 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 렌필드는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드라큘라가 관 속에 들어간 후 자연스럽게 렌필드는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영원한 삶에 대한 집착도, 컬렉션에 대한 집착도 사라졌다. 피를 갈구하던 욕망도 함께 사라져갔다. 그가 입원해있던 병원에서조차 놀랄 정도로 렌필드는 매우 빠르게 원래 자신의 모습을 되찾아갔다. 그리고 그는 병원에서 퇴원했다. 조나단은 매우 기뻐했고, 회사 측에선 그의 회복을 축하해주며 곧바로 그의 자리로 복귀시켰다. 늘 헝클어져있던 밀짚 머리도 단정하게 정리되었고, 구깃구깃하던 병원복도 빳빳한 정장으로 바뀌었다. 항상 입가에 흥건히 묻어있던 피도 사라졌다. 그는 완전히 옛날의 렌필드로 돌아왔다. 하지만 기억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드라큘라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영원한 삶만을 바라던 그 때 그 시절의 기억은 하나도 빠짐없이 남아있었다. 주변인들, 특히 조나단은 그가 빨리 잊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렌필드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계속 지금까지도 드라큘라를 주인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는 드라큘라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주인님이라고 부르던 그 시절 또한.

 

“제게… 제게 피를 조금이라도, 단 한 방울만이라도 주셨다면… 제가 당신을 지켰을 텐데. 당신과 함께 영원한 삶을 살고, 당신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그렇게 살아갔을 텐데….”

 

렌필드의 목소리엔 안타까움과 원망이 섞여있었다. 책망하듯 관을 보며 말했지만 관 속에 있을 그의 주인은 영면 속에 있었다. 렌필드는 지금이라도 드라큘라가 일어나길 바라고 있었다. 가슴에 칼을 꽂은 건 단지 쇼였다고, 그렇게 말하면서 일어나길 바랐지만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헛된 꿈이었다.

드라큘라는 죽었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

“어서와. 오는데 힘들었지?”

“아냐. 이 정도쯤이야. 그나저나, 이 동네는 여전히 분위기가 좋지 않군.”

“하하, 하지만 익숙해지면 나름 괜찮아.”

“…자네, 정말 계속 여기 있을 생각인가? 정말 여기서 살거야?”

 

자신의 코트를 벗어 걸어두며 조나단이 말했다. 멀리서 차를 준비하던 렌필드가 순간 멈칫했지만 이내 다시 하던 일을 마저 했다. 렌필드는 조나단의 말에 침묵했다.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조나단은 렌필드가 할 대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 보나마나 뻔 한 대답일 것이 분명했다. 이 질문은 벌써 조나단이 그에게 수십 번도 더 했던 질문이었다.

 

“자네, 진짜 여기서 계속 살거야? 그냥 이사를 가는 게 어때. 응?”

“…조나단. 날 걱정할 시간이 있으면, 그 시간을 네 와이프에게 좀 더 쏟는 것이 어떨까?”

“렌필드! 나는 한번 드라큘라에게 조종당했던 자네가 걱정돼서!”

 

결국 참다못한 조나단이 테이블을 내리쳤다. 찻잔이 흔들리며 작은 소리를 냈다. 렌필드는 작게 한숨을 쉬며 흔들린 찻잔을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조나단은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드라큘라에게 충성을 맹세하던 렌필드가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 기뻐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렌필드는 퇴원하자마자 자신의 집을 드라큘라성의 옆으로 옮겨버렸다. 드라큘라의 성이 바로 엎어지면 코닿을 거리였다. 자신을 조종하고 이용하던 남자가 뭐가 좋다고 옆으로 이사까지 오는 것인가. 말리고 또 말렸지만 렌필드는 조나단의 말을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친구였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조나단. 내 대답은 늘 똑같아. 앞으로도 그럴 거고. 나는 여기서 벗어날 생각이 없어.”

“그러니까 대체 왜?!”

“……약속했으니까.”

“뭘?”

“…당신에게 언제나 순종하고, 언제나 감사하기로. 약속했거든.”

 

렌필드의 대답을 듣자마자 조나단의 얼굴이 구겨졌다.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는 다는 듯 한 얼굴이었다. 렌필드는 조나단을 설득시키려 해봤지만 도저히 넘어올 것 같지 않았다. 이해만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그는 친구의 행동을 절대로 이해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결국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어버렸다. 조나단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미안하지만, 난 자네를 이해하지 못하겠어."

 

먼저 돌아가보겠네. 내일 회사에서 봐. 조나단은 걸어두었던 코트를 다시 집어 들고 문 밖으로 나갔다. 렌필드가 인사를 할 새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렌필드는 다시금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친구를 잃게 되는 걸까. 하지만 뜻을 굽힐 생각은 없었다. 드라큘라는 영원한 주인님이었다. 나만의. 영원한.

 

“……오늘도 언제나 감사하며, 언제나 순종하며….”

 

작게 중얼거리며 찻잔을 들었다. 그의 주인님은 여전히 대답을 해주지 않았지만 이젠 상관없었다. 대답을 해주지 않아도, 지켜봐주고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기껏 친구를 위해 준비했던 차가 식어버렸지만 입안에 감도는 맛은 제법 맛있었다. 혼자만의 티타임도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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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의 엔딩 후의 일.. 날조입니다...

렌필드도 정상으로 돌아온다면 어떨까, 그 후의 일을 써봤어요..

렌필드는 끝까지 드라큘라를 기억하면서 살았으면..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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