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스가] 생일

2016. 6. 12. 19:33썰썰썰/하이큐

[오이스가]

오이카와 토오루x스가와라 코우시







 최악. 이 단어야말로 지금을 말해주는 가장 적합한 단어라고, 스가와라 코우시는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지금이 아니라 오늘 하루 종일 이 단어를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 그거 진짜 싫은데. 작게 중얼거리며 책상위에 엎드렸다. 다들 떠들썩하게 밥을 먹는 점심시간이지만 스가와라는 그저 텅 빈 책상에 엎드려있을 뿐이었다.


 “…왜, 하필 생일날 이러는 거야.”


 낮게 내뱉어지는 한숨이 스가와라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듯 했다. 땅이 꺼질 것 같은 한숨을 다시금 내쉬며 스가와라는 오늘 일을 떠올렸다.

 오늘의 시작은,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부터였다. 눈을 뜨자마자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열어 연락을 확인했는데, 첫 문자가 오이카와였다. 연인이었던 그에게 연락이 오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문제는, 문자의 내용.

 

 [스가쨩. 미안. 오늘은 일이 좀 있어서 연락이 안 될 것 같아. 끝나고 연락할게.]


 미안함을 담은 문자에 스가와라는 결국 알았다며, 무리하지 말라는 말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조금 쓸쓸했지만 안 그래도 바쁜 사람일 텐데 굳이 그에게 떼를 쓰고 싶진 않았다. 그 이후, 평상시대로 씻고 밖을 나섰으나, 한참을 걷고 나서야 가방에 유니폼을 챙기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결국 달려가 유니폼을 챙기고, 다시 길을 나섰지만 스가와라는 책상위에 올려져 있던, 챙기지 않은 과제가 떠올라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 덕분에 장렬히 지각. 고3 수험생이 벌써부터 지각을 하면 어떡하니, 로 시작되었던 잔소리는 약 30분을 들은 것 같았다. 담임선생님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것일까. 실컷 잔소리를 들은 덕분에 모든 의욕까지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점심시간. 스가와라의 가방엔 그저 유니폼과 다음 시간에 제출할 과제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도시락도, 그의 지갑도. 결국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책상에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다이치도, 아사히도 점심시간이 시작되자마자 붙잡을 새도 없이 사라져, 행방을 모르는 상태였다. 그렇다고, 후배들에게 갈 수도 없고.

 스가와라는 다시금 한숨을 쉬었다. 어쩌다 한번, 하루 종일 일이 안 풀리는 날이 간혹 있곤 했다. 사람은 누구나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그런 날. 스가와라에겐 오늘이 그런 날 인 듯 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것이 너무나, 정말로 싫었다. 왜 하필 오늘일까.

 오늘은 6월13일. 그의 생일이었다. 딱히 생일날을 화려하게 보내야 한다던가, 꼭 챙겨야 한다던가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불행한 하루를 보내고 싶지 않은 것이 사람의 마음 아니던가. 그렇기에 스가와라는 더 우울했다. 결국 그는 한숨을 또 쉬었다. 이로서 세 번째였다.



 ***

 정말, 최악이야. 스가와라는 가방을 챙기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의 팔꿈치와 얼굴, 그리고 바지에 가려진 무릎엔 반창고가 붙어있었다. 다친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흔적이었다.

 그의 불운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듯 점심시간 이후에도 계속 되었다. 과제를 무사히 내서 불행이 끝나나, 했더니 그 다음 체육시간에 축구를 하다가 엎어져 넘어져버린 것이었다. 것도 모래바닥에서. 피를 본 덕에 양호실로 가서 상처를 치료하며 스가와라는 조금 더 서러워졌다. 이럴 때 오이카와라도 있었으면. 일이 바쁘다며 하루 종일 연락이 안 되는 그를 생각하며 그가 미워지기까지 했다. 왜 하필 오늘인거야.


 “……내, 생일, 인데.”


 교실에 돌아와 자신의 책상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빈 교실, 모두 아이들은 가버린 듯 했다. 자신이 없는데도, 종례를 다 끝내고 가버린 것일까. 이런 거, 매정하다고 생각해도 되는 걸까. 스가와라는 책상위에 올려진 쪽지를 들어올렸다. 먼저 체육관에 가있을게. 가방은 갖고 간다. 라고 단정하게 적혀있는 글씨를 보며 스가와라는 체육관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다이치와 아사히는 배구부 운동 때문에, 기다리기 힘들었으리라. 그래도, 음. 뭔가. 조금. 역시 씁쓸한걸.

 스가와라는 닫혀있는 체육관문을 보며 벌써 여러 번 내쉰 한숨을 또 다시 내뱉었다. 이번엔 또 어떤 불행이 기다리고 있을까. 솔직히 좀 두렵긴 했다. 넘어지기까지 했으니, 이번엔 배구공에 맞는다거나, 네트에 부딪친다거나. 설마, 누군가와 부딪치는 것은 아니겠지? 순간 덜컥 겁이 났다. 혼자 넘어지는 것은 괜찮아도, 누군가와 부딪치는 것은 스가와라 혼자 다치는 것이 아니었기에 불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의 불행으로 누군가 피해를 보는 것은 사양이었기에 최대한 조심해야지. 그렇게 다짐하며 천천히 체육관 문을 열었다.


 “…어? 다이치? 아사히? 얘들아?”


 체육관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것은 운동을 하고 있는 팀원들이 아닌, 어둠이었다. 커튼이 쳐지면 완전히 햇빛이 차단되었던 체육관은 그야말로 어둠이었다. 오늘 연습 날인데? 그런 생각을 하며 문을 천천히 닫았다. 일단 불이라도 키자. 그런 생각을 하며 앞으로 한걸음 내딛는 순간.


 “스가와라 코우시,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그의 앞뒤로 폭죽이 크게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생일 축하한다는 말소리와 함께 체육관을 울렸다. 그 큰 소리에 놀라 스가와라는 몸을 크게 움찔하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눈이 크게 뜨여지고 입이 벌어졌다. 얼굴 자체에 놀랐다고 크게 쓰여 있는 것 같았다. 생일 축하해! 다시금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스가와라의 눈앞에는 고깔모자를 쓰고 풍선을 들고 있는 팀원들과, 또 낯익은 얼굴의… 아오바죠사이?


 “에? 이게, 어떻게 된….”

 “말 그대로야. 스가와라 코우시의 생일축하.”


 다이치가 환하게 웃었다. 말이 끝나자마자 모두가 생일 축하한다며 한마디씩 떠들었다. 조금, 정신이 없었다. 그렇지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대체, 저… 아오바죠사이, 부원들은 왜?”


 스가와라가 의문을 표하며 고개를 돌리자 하얀색의 져지를 입고 있던 아오바죠사이의 팀원들이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혹은, 여전히 무표정이거나. 상황 설명이 필요했다고 생각한 건지 그 중 이와이즈미가 앞으로 나왔다.


 “망할카와가, 계획한 거야. 스가와라, 너 생일이라고.”

 “맞아. 연애중인 주장 때문에 부원들까지 이렇게 불려나온 거라고.”

 “그러니까 우리한테 고마워해도 돼.”


 이와이즈미의 말 뒤에 덧붙여 말하는 것은 분명 아오바죠사이의 3학년들이었다. 장난스레 말하는 그들을 보며 스가와라는 아직도 얼떨떨했다. 오이카와가 계획했다고? 이걸?


 “그러고 보니, 오이카와는 어디 있는데?”

 “그러고 보니, 라니. 스가쨩. 너무해. 이제야 찾는 거야?”


 낯익은 목소리. 그리고 제일 듣고 싶었던 목소리에 스가와라는 황급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러자, 똑같이 고깔모자를 쓰고 케이크를 들고 있는 오이카와가 제 뒤에 서있었다. 그가 좋아하는, 예쁜 웃음을 짓고 그렇게 서있었다.


 “오이카와.”

 “사실, 이거 준비하느라, 연락을 못한다는 거였어. 우리 사귀고 첫 생일인데 꼭 깜짝 파티를 해주고 싶었거든! 그래서, 모두에게 도와달라고 했던 거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오이카와를 보며 스가와라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런 그를 보며 감동한 거야, 스가쨩? 이라고 말을 덧붙이자, 스가와라의 표정이 조금 일그러졌다. 오이카와가 에? 하는 순간 스가와라의 눈가가 촉촉해지고 완전히 표정이 일그러지며 스가와라가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그리고 곧 으아앙, 하는 소리와 함께 무릎을 꿇고 앉아 스가와라가 펑펑 울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행동에 당황한 것은 오이카와였다. 모두의 얼굴엔 스가와라의 행동에 당황함과 동시에, 오이카와가 잘못했구만. 하는 표정으로 짜게 식어있었다. 결국 보다 못한 이와이즈미가 스가와라를 살짝 일으켜 세워 오이카와에게 넘겨주고는 그 둘을 체육관 밖으로 내쫓았다.


 “으흑, 으흐윽, 흑.”

 “스가쨔앙. 왜 울어? 응? 오이카와씨가 연락 안 해서 그래? 울지마. 잘못했어. 오이카와씨가, 다 잘못했어. 응?”

 “흐윽, 오이카와. 바보. 흑, 멍청이야. 바보야.”

 “응. 내가 바보고, 멍청이야! 그러니까 울지마. 잘못했어! 미안해.”


 스가와라가 울음 섞인 말을 내뱉자 오이카와는 그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저 다 맞다고, 잘못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오이카와는 자신이 무얼 잘못한지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무얼 잘못했는지는 몰라도 스가와라가 울음을 그치는 것이 최우선이었기에 그저 맞다고 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스가와라는, 스가와라 나름대로 울음의 이유가 있었다. 그저 서러웠다. 다. 전부다. 그 중 제일 큰 이유는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 오이카와가 반갑고, 미워서인지도 몰랐다. 오늘 하루 종일 운이 없었고, 그 때문에 다치기까지 했다. 하지만 오이카와는 없었다. 연락도 되지 않았고,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었다. 그랬는데 생일 축하를 위해 연락도 끊고 서프라이즈를 준비하고 있었다니. 막혀있던 서러움이 한꺼번에 터진 기분이었다. 오이카와가 너무나, 기쁘면서도 서러웠다. 사랑스러우면서도 미웠다. 지금 자신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오이카와에게 바보, 멍청이 따위의 말을 내뱉는 것뿐이었다.


 “바보, 멍청이야.”

 “응. 오이카와씨는 바보 멍청이야.”

 “…내가,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오늘 하루 종일 내내 운이 없었단 말이야. 그런데, 오이카와, 너는 보이지도 않고.”

 “……에? 어? 그러고 보니, 어?! 스가쨩, 얼굴! 얼굴이 왜이래?! 팔도?!”

 

 그제야 오이카와는 스가와라의 얼굴과 팔을 본 듯 했다. 얼굴과 팔에 붙어있는 반창고들을 보고 큰일이라도 난 듯 오이카와의 표정이 굳어져버렸다. 그 모습에 어쩐지 웃음이 나와 스가와라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울다가 웃는 그 행동을 오이카와는 이해할 수 없어 또 다시 얼굴에 의문을 띄웠다. 스가쨩? 하고 그를 부르자 스가와라 갑작스레 그를 안아왔다. 힘을 주어 안는 스가와라에게 그 특유의 시원한 향이 났다.


 “스, 스가쨩?”

 “…내가, 오늘 운이 없었다고 했잖아. 그 중에 일부야. 넘어져버렸거든. 엄청 아팠는데, 이젠 괜찮아. 토오루가 있잖아.”


 토오루가 있잖아. 이 말 한마디에 오이카와는 내심 감동한 것 같았다. 이 와중에 토오루라니, 이름이라니. 기쁜 것을 여실히 드러내는 오이카와에게 스가와라는 조금 더 그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그리곤, 고개만 들어 오이카와를 올려다보았다.


 “토오루. 선물은?”


 오이카와가 그를 살짝 내려다보았다. 10센티. 키 차이가, 정확히 그와 10센티가 차이 났다. 스가쨩, 그거 알아? 뭐? 10센티가 키스하기 좋은 키라는 거. 말을 마치자마자 오이카와가 젖어있는 그의 눈꺼풀과 속눈썹에 입을 맞추었다. 그 입맞춤이 조금 간지럽다고 느낄 때쯤, 오이카와가 그의 콧잔등에 한번, 그리고 입술에 살짝 입 맞추었다. 이 다음은, 집에 가서 해줄게. 기대해. 스가쨩. 최대한 그의 진심을 담아, 최대한 달콤하게 속삭이자 스가와라가 안고 있던 그의 몸을 확 밀었다. 이정도면 충분하네요. 그리곤 등을 돌려 체육관 쪽으로 걷자, 오이카와가 조금 울상을 지으며 쫓아갔다.

 오이카와가 보지 못한, 등을 돌린 그 사이, 스가와라의 입가엔 웃음이 살짝 걸려있었다. 하지만, 오이카와에겐 보여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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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늦어버린 오이스가 전력입니다..

저 혼자 전력 120분했습니다..(씁쓸

스가 생일은 뭔가 잔뜩 챙겨주고 싶었는데.. 음.. 어쩐지 생각나는건..

이런 것 뿐이에요.

스가와라 코우시,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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