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괴물빅터] 당신에게.

2014. 5. 4. 04:10썰썰썰/프랑켄슈타인

 —…어나….

 —……일어나….

 —……제발…일어나.

 

 누구야. 누가 날 부르는 거지.

 목소리가 들렸다. 띄엄띄엄 들려오는 흐릿한 목소리. 어둠속에서 들려오는 애절하고도 안타까운 목소리에 가슴이 쓰렸다. 그 목소리에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다. 분명 낯선 목소리인데도 아팠다. 심장께가 계속 아팠다. 낯선 목소리가 계속 불렀다. 일어나, 일어나. 낯선 목소리임에도 낯익은 느낌에 눈을 떠야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눈꺼풀은 매우 무거웠다. 들어지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목소리를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감정을 뭐라고 형용하지 못한채 그저 아파했다. 왜. 왜. 대체 어째서. 당신은 누군데 날 이토록 아프게 만드는가.

 

“…여긴 아무도 들어와선 안돼!”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낯선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멀어진 목소리 뒤에 남은 건 차가운 천의 감촉이었다.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힘겹게 무거운 몸뚱이를 일으켰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마치 갓 태어난 짐승새끼처럼 다리에 힘이 없어 계속 주저앉았다. 하지만 그 목소리를 다시 듣고 싶었다. 그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내가 이렇게 일어났노라. 당신의 바람대로 일어났노라. 하고 보여주고 싶었다. 그 의지하나만으로 다리에 힘을 주고 천천히 무릎을 세워 차디찬 철침대를 지지대삼아 일어났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휑한 공간안에는 차가운 철침대와 천쪼가리, 정체모를 기계들만이 자리잡고 있었다. 당신은 어디있는 걸까. 내가 일어나는 것을 기다리지 못한 것인가.

갑자기 가슴한켠이 차가워졌다. 갑작스레 갈증이 일었다. 허기가 졌다. 그 사람이 필요했다.

 

“…끄으으으……끄으으….”

 

 소리를 내었다. 아닌데. 이게 아닐터인데. 그 사람은 이런 소리를 내지 않았어. 다시 한 번 소리를 내었지만 내 목에서 나오는 소리는 바닥을 긁는 것 같은 소음일 뿐이었다. 이런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나도 당신을 부르고 싶었다. 내가 일어났어. 눈을 떴어.

 

“……시체의 목이 없어졌다고 했ㄴ……!”

“들어가지 말라고 했잖…!!…앙리…?”

“오…세상에…”

“…앙리……맙소사, 앙리…!!”

 

 아까 들었던 목소리였다. 그 애절한 목소리가 다시금 들렸다. 그 목소리의 주인인 남자는 많은 감정을 담고 날 쳐다보고 있었다. 감동, 기쁨, 환희, 안타까움, 애절함…. 그 모든 것을 담아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담고 있었다. 그 시선에는 내가 비춰져있었는데 당신은 날 보고 있지 않았다. 나는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가만히 있었다. 남자는 여전히 감격스러운 얼굴로 바닥에 있던 코트를 나에게 입혀주었다. 남자에게서 나는 향이 코트에서도 진하게 났다. 이건 당신의 코트구나. 조금 기뻤다.

 

“…내가, 내가 해냈어! 앙리가 살아났다고! 내가 생명을 창조한거야!”

“누나, 룽게. 봐봐. 내가 해냈다고!”

“앙리. 우린 성공했어! 생명창조에 성공한거라고!”

 

 앙리…창조… 당신이 날 만들어낸건가? 당신이 나의 창조주였나. 그래서 그렇게 가슴이 아팠던 걸까. 남자, 아니 창조주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는 계속 생명을 창조해냈다며 날보고 떠들어댔다. 창조주는 날 앙리라고 불렀다. 계속, 계속 앙리라고 불러댔다. 하지만 그건 내 이름이 아니었다. 그 정도는 갓 태어나 아무것도 모르는 나라도 알 수 있었다. 창조주는 내 이름을 지어준 것이 아니었다. 창조주는 내 모습에서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갈증이 심해졌다. 목 안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갈증을 해소해야했다.

 —아, 사람이다.

 어떤 남자의 목을 물어뜯었다. 향긋한 비린내가 풍겼다. 고통스러운 신음소리와 공포가 담긴 비명소리가 방안을 가득채웠다. 물어뜯고 피를 마셔도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오히려 허기까지 심해졌다. 밑바닥에 있던 어두운 무언가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목을 비틀어버리자 뼈가 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늙은 남자는 바닥에 쓰러졌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창조주에게 시선을 돌렸지만 돌아오는 것은 공포와 혐오였다. 창조주는 바닥에 주저앉은 나에게 다가와 사슬로 목을 조였다. 소리가 들리진 않았지만 창조주는 고통스러워했다. 라고 생각했다. 왜. 어째서. 나의 창조주시여. 나의 신이시여. 왜.

 점점 숨이 막혀왔다. 의식을 놓아버릴 것만 같았다. 쇠사슬을 잡고 세게 잡아당겼다. 쇠사슬이 끊어짐과 동시에 그 반동으로 창조주가 멀리 나동그라졌다. 잠시 그걸 보다가 다리에 힘을 주어 일어났다. 문을 향해 뛰었다. 죽고 싶지 않았다. 절대로 죽고 싶지 않았다. 태어난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아서, 날 만든 창조주에게 죽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계속, 계속 가슴이 아팠다.

 

 

* * *

 잠시 과거를 떠올리던 괴물은 목을 어루만졌다. 목에는 한 줄로 된 징그러운 흉터가 자리잡고 있었다. 흉터는 치료가 되지 않아 곪고 썩은 듯 시커멓게 변해 부어있었다. 상처 때문인지 목 위에 머리를 얹어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괴물은 목을 어루만지던 손을 내리다가 멈칫했다. 손이 어중간하게 공중에 떠있었지만 신경쓰지 않은채 계속 손을 들고 있었다. 괴물은 잠시 손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코트소매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이 처음 태어났을 때 입혀졌던 빅터 프랑켄슈타인, 그의 창조주의 코트였다.

 3년, 아니 정확히는 그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입었던 코트는 이미 곳곳이 찢기고 너덜너덜해져있었다. 코트로써의 제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되어보였지만 괴물은 코트를 벗지 않았다. 무투장에 끌려갔던 그 때 외에는 계속, 계속 입고 있었다. 빅터의 코트는 이미 괴물에게 있어서 그의 일부이자, 중요한 무언가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한참을 보던 괴물은 느릿하게 코트를 벗었다. 코트에 얼굴을 파묻고 숨을 들이키자 흙냄새와 피냄새가 섞여들어왔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도 강하게 그의 향이 났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향이 남아있었다. 그의 향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코트에 남아있었다. 괴물은 가슴이 지끈거렸다. 심장이 쿵쾅쿵쾅, 미친 듯이 소리를 내며 뛰었다. 순간 코를 박고 있던 코트에서 얼굴을 떼고 코트를 높게 쳐들었다. 던지려는 듯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하지만, 결국 괴물은 코트를 던지지 못했다. 그 대신 힘없이 무릎을 꿇고 털썩, 주저앉았다. 괴물은 조심스레 코트를 끌어안았다. 다시 희미하게 빅터의 향이 났다. 마치 그가 바로 앞에 있는 것 같은 환상이 일었다. 그러나 환상이라는 것을 말해주듯이 차가운 바람만이 그의 맨살을 감쌌다. 코트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그는 마치 흐느끼는 듯 어깨가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코트는 끝까지 적셔지지 않았다.

 

‘…앙리, 앙리.’

‘……앙리. 나야. 빅터….’

‘괴물! 너는 괴물이야!’

‘죽어버려! 이 괴물!’

 

 머릿속에서 빅터의 목소리들이 한데 모여서 울렸다. 괴물은 고통스러운지 들고 있던 코트를 떨어뜨리고 머리를 감싸쥐었다. 상냥하고 따뜻하게 그를 ‘앙리’라고 부르며 다가오던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목소리는 점점 증오와 분노, 슬픔만을 담아 그를 괴물이라 부르고 분노의 말만을 퍼붓고 있었다. 괴로웠다. 고통스러웠다.

 —어째서 창조주는 자기멋대로 자신을 창조해놓고 이제와서 저주하고 분노하며 통탄해하는가. 호기심에 만들어놓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것은 너무나도 이기적인 창조주가 아닌가.

 

“…빅터……프랑켄 슈타인….”

 

 괴물이 씹어뱉어내듯 이름을 불렀다. 그 목소리에는 자신의 창조주를 향한 고통과 분노가 담겨있었다. 감싸쥐고 있던 머리에서 천천히 손을 뗀 괴물은 자신의 목에 다시 손을 대었다. 흉하게 부어올라 울퉁불퉁한 흉터의 감촉이 느껴졌다. 괴물은 흉터를 잡아뜯어내듯 세게 쥐었다. 흉터가 조금씩 뜯기며 붉은 피가 베어나왔다. 손을 떼어 손에 묻은 붉은 피를 바라보았다. 검붉은 피가 손가락 끝에 진하게 묻어있었다.

 

“…아파. 아프다. 이렇게 아픈데. 보통 인간들처럼 새빨간 피가 나오는데. 어째서 너는…당신은 날 괴물이라 부르는 건가. 왜 난 인간이 아니야? 빅터 프랑켄 슈타인. 나의 창조주시여. 말해. 말해. 당장 말해보란 말이다!”

 

 괴물은 고통스러운 듯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는 흡사 비명과도 같았다. 중간중간 어째서. 왜.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여전히 쥐어뜯은 목에서는 피가 배어나와 가슴과 배를 타고 내려왔지만 괴물은 개의치 않는 듯 연신 소리를 질러댔다. 소리를 질러대도 고통스러운 느낌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가슴께가, 정확히는 왼쪽부근이 지끈거렸다. 쿵쿵, 거리는 고동소리가 들렸다.

 

“…빅터 프랑켄 슈타인. 나의 신이시여. 당신이 직접 창조한 나를 인간이라고 인정해주지 않겠다면, 끝까지 날 괴물이라고 부르며 저주하겠다면 내가 직접 보여주겠다. 내가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웠는지 알게 해줄테니까. 나도 인간과 똑같이 느끼고 있다고 그렇게 당신에게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끝엔 결국 당신이 나를 인간이라고 인정하게 만들겠다.”

 

 빠드득, 이를 가는 소리가 어두운 숲 속에서 울렸다. 괴물은 바닥에 떨어져있던 코트를 천천히 주워들어 입었다. 코트는 이미 차가워질대로 차가워져있었다. 그에 따라 괴물의 피도 차게 식는 것 같았다. 그의 목에서 배어나오던 새빨간 피는 어느새 멈추어 굳어있었다. 코트를 다 입은 괴물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찬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 사이로 괴물은 모습을 감췄다.

 

 

-공백포함 4666자

-공백제외 3492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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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 느꼈던 절망감, 배신감, 분노같은걸 써보고 싶었습니다.

과거에 처음 눈을 떴을때라던가 인정받지 못하고 죽을뻔했을때라던가 그 당시에 어땠을까 싶어서..

거기에다가 추가로 괴물은 복수를 다짐하면서도 빅터의 코트는 끝까지 벗지 않아요.

왜 괴물은 끝까지 빅터의 코트를 입고 있는걸까요? 라는 의문에서 시작한 썰이기도 합니다.

'괴물이 빅터의 코트를 끝까지 입고 있는 이유' 에 대해선 나중에 다시 풀어볼 생각입니다.

머리속에서 이것저것 떠오르는데 정리가 안됩니다 으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