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스가] 고백

2016. 5. 22. 05:59썰썰썰/하이큐

[오이스가]

이카와 토오루x스가와라 코우시






 오이카와 토오루, 스가와라 코우시. 그 둘에게 접점이라곤 오로지 ‘배구’하나 뿐이었다. 그리고 승리를 위해 경쟁하던 상대. 말하자면 숙명의 라이벌, 같은 존재일까. 정확히 말하자면 서로가 속해있는 팀 아오바죠사이와 카라스노의 관계성이 그렇다는 것이고, 더 정확히 말하면 숙명의 라이벌에 가까운 것은 오이카와 토오루와 스가와라 코우시가 아닌 카게야마 토비오였다는 것 정도? 오이카와에게 스가와라는 ‘상쾌하지 못한 서브를 하는 상쾌군’이었고, 스가와라에게 오이카와는 ‘실력이 뛰어난 아오바죠사이의 세터이자 주장’이었다. 그리고 이상하리만치 기억 속에 남았다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진.




***

 “스가쨩, 오늘 서점 갈 거지? 오이카와씨도 갈래!”

 “왜? 뭐 살 거 있어?”

 “…그냥 배구서적이 나왔나 궁금해서! 같이 갈 거지, 스가쨩? ”

 “어차피 나 혼자 가는 거니까, 그럼 그러자. 있다가 교문 앞에서 봐.”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상황도 변해갔다. 제일 큰 상황변화는 오이카와와 스가와라의 관계성에 관한 것이었다. 우연이라면 우연이었다. 그 둘이 같은 대학에 입학한 것은. 오이카와는 배구를 계속 하기위해 체대에 진학했고, 스가와라는 일반 대학이었다. 과의 차이가 있었지만 어쨌거나 같은 학교였다.

 그리고 정말 우연이었다. 그 둘이 마주친 것도. 여느 때와 같은 새 학기의 점심시간. 서로 다른 건물에서 나와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가로 이동하던 때였다. 식당가 앞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발견하고 입을 열었다. 카라스노의 상쾌군?! 아오바죠사이의 주장?! 하고 서로가 서로를 기억하고 있음을 드러내며 그렇게 처음 만났다. 스가와라도 오이카와도 낯가림이 심하거나 소심한 성격이 아니었다. 설령 과거에 승리를 위해 싸웠던 상대였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같은 학교, 다른 과의 동기. 단지 그 뿐이었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겐 ‘배구’라는 공통된 주제도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변했을 때즈음엔 그들은 어느 샌가 절친 이라는 이름을 달고 같이 밥을 먹고, 같이 과제를 하고, 같이 시험공부를 하고, 같이 집에 가는 그런 사이가 되어있었다.


 “스가쨩, 가자.”

 “응. 근데… 오이카와.”

 “왜?”

 “여기 어깨에 두른 팔 좀 치워줄 생각 있어?”

 “음, 아아니?”

 “덥지 않아?”

 “전혀. 상쾌군은 상쾌하니까 괜찮아.”


 그건 무슨 이상한 논리야. 스가와라가 오이카와의 옆구리를 찌르며 대꾸했다. 오이카와는 작은 신음을 내며 몸을 조금 움츠렸지만 어깨에 두른 팔은 내리지 않았다. 결국 스가와라는 패배선언으로 작게 한숨을 쉬며 걸음을 옮겼다.

스가와라의 어깨에 올려진 오이카와의 손은 서점에 다다를 때까지도 그대로 있었다. 요즘 오이카와는 그랬다. 간혹 어깨에 팔을 두른다거나, 손을 잡는다던가, 손가락을 만지작거린다거나. 스가와라는 스킨십에 별로 예민하지 않은 편이었다. 고등학교 때 배구를 하면서 늘상 하던 것이 팀원들과의 신체접촉이었다. 당연히 예민할 리가 없었다. 어깨동무도 늘 하던 것이었다. 하지만 오이카와는 그것이 너무 길었다. 어깨에 손을 올리거나 손을 잡으면 잘 놓으려 하지 않았다. 그런 오이카와의 행동들이 싫다기보다, 어딘가 자꾸 간질거리고 미묘한 기분이 들어 불편했다. 그래. 불편했다. 하지만 그것을 스스로의 입 밖에 낼 수는 없었다.

 다행히도 서점 안에 들어가서는 오이카와의 팔이 내려가 스가와라는 불편한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배구서적을 보러왔다던 오이카와는 스가와라의 옆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가 고르는 책을 한번, 스가와라를 한번 번갈아 쳐다보고 가끔 스가와라가 들어 올리는 책을 저도 한번씩 보곤 했다.


 “배구서적 본다며. 배구서적은 저쪽입니다. 오이카와씨?”

 “생각해보니 내가 보려던 배구서적은 다음 주에 나온다고 했던 걸 깜빡했어. 나는 다음 주에 다시 오고 오늘은 스가쨩이 책사는 거 구경 할 거야.”

 “그래? 뭐, 그럼. 나도 다 골랐으니까 슬슬 나가자. 저녁 먹을 거지?”

 “어? 스가?”


 스가와라가 자신이 보던 책을 한손에 들고 발걸음을 돌리던 찰나였다. 둘 다에게 낯익은 목소리가 들린 것은. 스가와라가 빠르게 고개를 돌리자 자신의 동료이자, 주장이었던 사와무라 다이치가 스가와라를 보며 웃고 있었다.


 “다이치!”

 “스가!”


 다이치와는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었다. 입시가 끝난 이후에 원서를 넣고 면접 준비를 하는 등 바빠 만날 시간이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학교에 다니느라 다이치를 만날 시간이 없었다. 스가와라는 반가운 마음에 다이치에게 빠르게 다가가 그를 껴안았다. 다이치도 무척이나 반가운 듯 그를 마주 안아주었다. 반가운 만큼 힘주어 안고 있자, 그 사이로 한 사람의 목소리가 가르고 들어왔다.


 “스가쨩이랑 사와무라는 이산가족이에요?”


 퉁명스런 목소리에 다이치도 스가와라도 포옹을 멈추고 떨어져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스가와라의 뒤에서 오이카와가 그 둘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딘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표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아. 오이카와… 토오루. 반갑다. 오랜만이지?”

 “그래. 사와무라 다이치. 엄청 오랜만이야. 스가쨩이랑 감격의 포옹은 다 한거야?”


 다이치는 스가와라에게 오이카와에 대해 들어 알고 있었다. 둘은 만나지만 못했을 뿐, 연락은 계속 하고 있었다. 스가와라가 처음 오이카와와 마주친 날 그에게 연락을 했었다. 나 지금 오이카와를 만났어! 하고. 그 때부터 알게 된 스가와라와 오이카와의 관계가 제법, 아니 꽤나 발전되어 있는 것 같아 사실 다이치는 조금 놀란 상태였다. 역시 같은 학교가 좋은 거구나. 싶을 정도로. 다이치는 그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여기도 바쁜 것 같고, 나도 저쪽에 일행이 있어서. 다음에 다시 보자. 스가. 연락할게.”

 “응. 다이치. 잘 가!”


 스가와라가 다이치에 인사를 하자마자 오이카와가 스가와라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단번에 몸을 돌려 계산대로 향했다. 오이카와의 손엔 힘이 들어가 있었고 그런 그를 보며 스가와라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딘가 화난 것 같은데 대체 왜일까. 다시금 간질거리는 불편한 기분을 느끼며 스가와라는 의문을 피웠다.

 계산대로 빠르게 향해 책값을 지불하고 거리로 나왔다. 서점에 있었던 시간이 제법 길었는지 학교에서 나왔을 때 노을이 내리던 하늘이 어느 샌가 완전히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다. 퇴근을 하거나 데이트를 즐기는 많은 사람들 사이로 오이카와와 스가와라는 그저 말없이 걷고 있었다.

 가끔 오이카와는 이렇게 이해할 수 없이 화낼 때가 있었다. 아니, 스가와라에게 직접적으로 화를 내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처럼 온 몸으로, 얼굴로 자신이 기분이 좋지 않음을 어필하고 있었다. 오이카와라는 남자는 자신의 감정에 대한 컨트롤이 꽤 좋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다. 스가와라가 느끼고 있는 오이카와에 대한 느낌 중 하나였다. 가령, 그랬다. 여자 동기들이 같이 밥을 먹자며 슬쩍 팔짱을 낀다거나, 어딜 가자며 손을 잡아 이끈다거나, 남자들과 포옹을 한다거나 이런 상황에서 오이카와는 늘 스가와라를 떼놓고 싶어 했다. 물론 말로 하진 않았다. 그런 상황 이후엔 늘 기분이 언짢음을 드러내거나, 뒤에서 불편한 표정으로 쳐다본다거나, 가령 여자애들이 잡은 손을 자기가 다시 잡는다거나. 그런 행동들을 하곤 했다. 스가와라는 오이카와의 이런 태도에 대해 알 수 없었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라는 소꿉친구가 있었다. 매일 같이 등하교를 하고 운동을 하고 밥을 먹고 숙제를 했을 터였다. 그런 단짝친구와 둘만의 시간에 익숙해져있는 것일까? 후에 스가와라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부터 오이카와가 이런 행동을 취하진 않았으니까.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스가와라 자신은 그런 친구가 없었다. 그저 다 같은 팀원. 같은 학년의 좋은 친구들이 전부였지 같은 학교의 소꿉친구는 없었다. 그래서 이해를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그렇게 이해했다. 

 그리고 오이카와의 이런 행동들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들뜨기까지 했다. 어쩐지 괜히 소중하게 여겨지는 기분이 들었다. 간혹 오이카와가 따라서 포옹을 하거나, 손을 잡으면 간질거려서 불편했지만 어쩐지 조금 들떠서 이런 상황에선 즐겁게 참을 수 있었다. 문제라면 오이카와의 얼굴은 언짢아보였지만 그럴 때마다 스가와라의 얼굴은 피실피실 웃음이 새어나와 곤란했다. 그래, 지금도.


 “…토오루.”


 아. 움찔했다.


 “토오루. 걸음이 너무 빨라. 응? 어디까지 가는 거야. 저녁 안 먹을 거야?”


 결국 오이카와가 걸음을 멈췄다. 스가와라는 이미 익숙해진 듯 빙긋, 웃고 있었다. 보통 스가와라는 그를 오이카와라고 불렀지만 이런 상황에선 토오루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에 대한 효과는 제법 성공적이었다. 오이카와도 꽤나 좋아하는 듯 금방 얼굴이 풀어지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닌 듯 스가와라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풀기엔 쉽지 않아보였다.


 “스가쨩. 아니, 코우시. 사와무라랑 친해?”

 “당연하지. 3년 동안같이 배구했는걸. 소중한 우리 주장이니까.”

 “그럼, 그럼 나는? 오이카와씨는?”

 “그야 친한 친구지.”

 “…사와무라는 소중한 우리고, 나는 친한 친구야?!”


 뭐? 스가와라는 조금 얼빠진 얼굴로 오이카와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여전히 표정이 구겨져 있었고, 그 표정을 스가와라는 읽을 수 없었다. 오이카와가 대체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알 수 없어 더 답답했다.


 “오이카와. 대체 왜 그래. 대체 왜 화가 난거야?”

 “…….”

 “말을 해야 알지. 그래야 내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사과하고, 오해한 것이 있으면 풀 거 아냐.”

 “나도, 이 오이카와씨도 스가쨩의 소중한 우리가 되고 싶어.”


 뭐? 두 번째 였다. 이 질문이 매우 바보 같고 이상한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스가와라는 다시금 물을 수밖에 없었다. 항상 논리적으로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하던 오이카와가 지금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해대고 있었다.


 “토오루. 미안한데, 나 못 알아듣겠어.”

 “나도, 나도 스가쨩의 소중한 사람이 되고 싶어! 대체 얼마나 참아야 하는 거야? 이젠 그만 참고 싶어! 어느 샌가부터 스가쨩에게 욕심이 생겨. 자꾸 욕심 부리고 싶어. 몰라. 나한테는 그냥 스가쨩은 상쾌군이었는데 그 상쾌함이 너무 좋았어. 그 뿐이었는데, 이젠 그 상쾌함이 없으면 안 돼.”

 “……오이카와.”

 “전부 내던지면 웃으면서 스가쨩과 지낼 수 있을까? 잊어버리면 스가쨩을 쉽게 대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 계속, 계속 생각했는데 그런 건 불가능이었어. 자꾸 나는 스가쨩한테 가슴이 뛰는데, 욕심이 생기는데 스가쨩은 아니잖아. 그게 싫었어. 여자애들이 손잡는 것도 불쾌하고, 남자애들이랑 끌어안는 것도 불편해. 그래서 아무도 못 만지게 하려고 내 품에 가두고, 내 손에 네 손을 쥐었어!”


 막 혀있던 댐이 터져버리 듯 오이카와의 입에선 계속해서 말이 나왔다. 그 말들은 스가와라의 머릿속과 가슴속으로 흘러들어와 채우고 있었다. 이해되지 않았던 말들이 점차 이해가 가기 시작하자 채우는 속도나 무게감이 더해져갔다. 오이카와는 막고 있던 자신의 마음을 전부 풀어버리고 있었다. 스가와라가 감당하기에 너무나도 크고 가득 쌓인 그런. 분명 고백임에도 황홀함이나 로맨틱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왜 기분이 나쁘지 않을까. 왜 두근거리는 걸까.


 “너무 아픈데, 네가 너무 좋아. 스가쨩이 너무 사랑스러워. 스가쨩의 존재가 날 전부 채워서 완전 스가와라 코우시로 물들어 가는 기분, 알아? 나는 스가쨩과 이렇게 같은 시간을 공유하게 된지 얼마 안됐어. 하지만 사와무라는 아냐. 나도 알아. 그래서 욕심내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싫어! 네가 사와무라와 대화하고, 포옹해서 사와무라로 채워지는 것이 싫어. 짜증날 정도로 불쾌해. 아무한테도 가지마. 아무한테도 하지 마. 그런 거.”


 스가와라는 그의 말을 막지 않았다. 끊지도 않고, 그렇다고 대꾸하지도 않았다. 오이카와는 그답지 않게 조금 조급해보이기도 했다. 그가 아직 말이 끝나지 않았는지 다시금 입을 열었다.


 “네가 필요해. 코우시. 욕심낼 거야. 포기하라고 해도 싫어. 절대로 싫어. 오이카와씨는 포기할 줄 몰라. 게다가 엄청 노력파거든. 스가쨩이 싫으면 내가 노력하면 돼. 그러니까,”


 …밀어내지만 마. 오이카와가 작게 중얼거리듯 내뱉고 말을 마쳤다. 그는 그제서야 자신이 무슨 말들을 했는지 인지한 듯 했다.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돌렸다. 맙소사, 오이카와. 무슨 말을. 이런 말들이 들리는 것도 같았다. 그런 오이카와를 보고 스가와라는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대체 이 남자를 어찌하면 좋을까. 결국 스가와라는 말없이 팔을 벌려 오이카와를 끌어안았다. 그러자 오이카와의 몸이 눈에 띄게 굳는 것이 느껴졌다. 그 반응에 답하는 것 마냥 스가와라가 끌어안은 팔에 조금 힘을 주었다.


 “토오루. 너, 정말…. 고백이 말이야. 하나도 로맨틱하지 않았는걸. 게다가 엄청 많이 말한 거 알아? 다 알아듣지도 못했다구. 그래도 확실한건 네 말들이 내게 채워지고 있다는 거야. 그러니까 나도 너로 가득 차게 기다려줘.”








--------------------------------------------------------------

오이스가 전력 60분!! 그동안 참여 못하다가 겨우 참여했는데,

또 시작이네요.. 그래도 전력주제가 너무 좋아서

늦게 나마 참가했습니다ㅠㅠㅠㅠㅠ

로맨틱달달한 고백도 좋아하지만, 집착과 소유욕이 섞인 것도

최고... 최고오오...

'썰썰썰 > 하이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이스가] 시작과 끝의 세계 -2  (0) 2016.06.02
[오이스가] 인어  (0) 2016.05.29
[오이스가] 시작과 끝의 세계  (0) 2016.05.17
[오이스가] 달이 빛나는 밤에.  (0) 2016.05.12
[오이스가] 10cm  (0) 2016.05.08